야. 안녕. 살다 보니 너한테 편지를 쓰는 날이 다 오네. 원래는 얼굴 보고 얘기할까 하다가... 그런 거 있잖아. 말로 하긴 좀 민망한데 담아두기에는 찝찝한 거. 좀 오그라 들지만 용기내서 몇 자 적어본다. 그래도 별 건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는 마 ㅋㅋ 아, 잠깐만. 너 또 지금 내 욕하고 있지. 얘 이거 안 읽는 거 아니야?! 진짜 별 거 아니니까 좀...
우울증이었다. 귀찮은 게 많아지고 욕심이 사라졌다. 매일같이 무수히 생겨났던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던 것이 차례대로 삭제됐다. 처음에는 '이렇게 어른이 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어른, 의 모습과는 조금 많이 달랐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할 게 없었다. 알고 보니 나는 무채색이었구나. 원래 난 좀 이런 사람이었나 보다. 어쩐지 버거웠어. 안 그...
타임. 잠시 주마등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좋을 것도 없었지만 나쁠 건 더더욱 없었던 김도영과의 삼 년, 정확히 따지자면 일 년 남짓한 시간. 사실 굳이 반추 씩이나 할 필요도 없었다. 대충 훑어봐도 애인으로서 잘한 거 하나 없었으니까. 그 흔한 좋아한다는 말 한번을 해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김도영이 원하는 꿀 떨어지는 눈으로 봐 준 적도 없었다. 달달...
김도영은 계획형 인간이다. 본인만의 일정표 안에서 자그마한 동선들을 짠 뒤, 어떻게든 지켜 내느라 혼자 부지런하고 혼자 바쁘다. 그렇다고 거창한 부류의 계획을 세우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양말을 신는 시간이나, 나가기 전 물 한 모금 마시는 시간. 아니면 신발을 고르는 시간 이런 거. 보잘 것 없다. 재현은 그런 김도영이 '귀엽다' 고 생각했다. 딱히 논리에...
시작은 학교 앞 이디야 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복숭아 아이스티. 도영은 커피를 먹지 못했다. 그런데 저 애는 커피를 좋아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샷을 세 번이나 추가 시키지. 하나 하나 따져봐도 맞는 게 한 가지도 없다. 옷 입는 스타일도 그렇고, 음식 취향도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나한테, "나 채식 주의자야." ...
시작은 안주 세 개 이만 천 원 짜리 호프집 이었다. 오뎅탕이랑, 콘치즈랑, 케이준 샐러드. 정재현은 치커리가 싫었다. 못 먹는건 아닌데 콘치즈랑 오뎅탕을 앞에 두고 굳이? 그런데 그 애는 치커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엉덩이 붙이고 있는 내내 초록색 줄기만 골라 씹어 먹는 게 대충 프레쉬한 입맛을 가지고 있네 싶었다. 그래서 생긴 것도 프레쉬 한가. 처음...
심장이 뛰어서 죽지 못했다고 한다면 믿어질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심장이 뛴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김도영은 죽지 못했다. 이유는 심장이 뛰어서다. 해도 해도 너무 두근거렸다. 강제로 멈춰 버리기에는 미안할 만큼. 왜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지. 도영은 다섯 개의 플라스틱 덩어리 앞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희한한 일이다. 하나하나 얼굴이...
차였다. ‘아들.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아, 응. 요즘 조금 바빴네. 잘 지내시죠? 뭐해?” 차였다. ‘잘 준비하지. 근데 아들. 목소리가 왜 그래?’ “아, 감기 기운이 있나… 코가 좀 막히네.” ‘그래?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다녀.’ 차였다. “응. 엄마도 조심해, 요즘 날씨 많이 히끅, 추워졌더라.” ‘… 아들. 우니?’ “아니. 울기...
업무의 연장선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