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할아버지가 진노하셨다. 워낙 점잖은 분이시기에 식탁을 뒤엎고 골프채를 휘두르는 대신 괘씸한 손주놈을 성수동으로 좌천하셨다. 그 자식의 본거지는 외향력이 절로 하이를 찍는 말리부 해변 근처였다. 주된 업무는 놀고먹기. 직업은 졸부의 막냇손자. 이름은 제이 정, 실명은 정재현. 지지난달 영빈관 입장을 위해 입국했고 지난달엔 파혼을 선언했다. 정재현에게는...
1. 기분 탓인가. 올해는 비가 유난히 잦은 것 같다. 도영은 카운터에 양팔을 올려 두고 튀겨지는 아스팔트를 구경했다. 찍먹 탕수육처럼 앞코가 젖은 신발들과 건더기가 되어 버린 올해의 마지막 은행잎들. 유리창 너머로 물장구를 일으키는 은색 E클래스. 번호판에 적힌 숫자 네 자리는 안 봐도 0070. 도영은 저 안에 누가 들었는지 알고 있다. 백미러에 쪼마난...
부드러운 선율이 귓가에 선연하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1악장, 「밤 인사」. 지금처럼 촉촉한 밤에 딱 어울리는 선곡이다. 남색으로 물든 하늘과, 저 멀리 떠 있는 샛노란 초승달. 그리고, 구슬픈 피아노 소리에 맞춰 떨어지는 삼만칠천구백육십칠 개의 빗방울들. 으븝. 퉤. 도영은 빠르게 볼을 흔들었다. 아니 비가 줄줄 내리는데 이 미친놈이 차 뚜껑을 떡하...
조던 형님께서 말씀하셨다. '승리로 이끄는 건 재능이다. 그러나 팀워크는 우승을 가져온다.' 출처는 [네이버 블로그: 고독한 사냥꾼의 인생탐험] 2014년 7월 16일 게시글이다. 조던 미드 빨검 최신순으로 서치하다 무심코 발견했다. 정재현 인생을 전과 후로 나누는 절취선이기도 하다. 은행잎 휘날리는 gif 명언 이미지와 투데이3의 폐급 블로그. 참고로 이...
딩동댕동. 동댕딩동. 파종소리가 울려퍼진다. 3교시가 시작한지 체감 10분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도영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사족을 달달 떨어가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옮기는 중이었는데... 잠깐. 벌써 수업이 끝났다고? 말도 안 돼. 고작 심부름 하나 땜에 소중한 수업시간을 날려 버리다니. 도영은 삐걱대는 양팔에 힘을 실었다. 품안 가득 아슬하게 껴안긴 건...
재현아. 라고 했다. 안경이 주륵 흘러내렸다. 재현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콧잔등에 손을 기댔다. 그러다 다시 주륵. 영 성가시는 통에 그냥 벗어던졌다. 글자가 흐려진다. B-787-8. 예약한 항공의 편명이었다. 재현은 서랍을 열어 구석에 박혀있던 초록색 여권을 꺼내 들었다. 커버를 넘기자 그나마 덜 늙은 박호영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구역질이 나는 바람에...
'어... 저녁 되니까 진짜 추워요. 지금 저는 택시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파스타... 파스타가 엄청 먹고 싶었는데 파스타를 못 먹게 됐어요. 얼른 가서 영숙이 산책시켜 주려고요. 근데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죄송해요. 연락 많이 기다리셨죠. 이사님은 저녁 먹었어요? 이거 보시면 뭐 먹었는지 알려 주세요. 아, 그리고 서울 오면 저 파스타 만들어 주...
날씨가 지독했다. 영하 십칠 도에 폭설 주의보. 우산이 무거울 만큼 뻣뻣한 눈이었다. 택시는 도로 위에서 초밥이 됐고, 버스며 지하철은 죄다 지연에 발등은 폭폭 잡아먹혔다. 덕분에 도영은 한 시간이나 걸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삼십 분 안에 집에 도착했어야만 한다. 삐리릭. 도어락이 입을 열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얘도 타이밍이 조금 느렸다. 신발 앞코...
진지하게 생각한다. 어쩌면 인류는 가장 하등한 생물체 집단이 아닐까? 시력 안 좋고 냄새 못 맡고 이빨 무디고 귀 안 들리고 느리고 왜소하고 나약하고 등등등. 생각해 보면 세상을 구하는 것도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타고난 성정마저 못돼 처먹어가지고는 천사 타이틀도 강아지에게 빼앗겨버렸다. 진짜 왜 살지? 그냥 다 같이 멸망하면 안 돼? ... 라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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