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는 화려했다. 알전구를 껴입은 나무들과 빨갛고 푸른 빛을 띠는 조명들. 연말 시즌답게 거리의 사람들은 휘청대는 걸음을 하고 있었다.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장신의 남자 두 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수 있을 만큼이었다. "저, 이사님." "네?" "……." "왜요." 아니, 아니에요. 도영은 꿀꺽 말을 삼켰다. 정면을 향한 정이사 얼굴이 빨갛게 얼어...
더 이상은 재미가 없다. 그렇다 해서 처음엔 재미가 있었다는 건 아니지만... 깜짝깜짝 놀라고 긴장되는 감은 없잖아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지친다. 조금 더 긁으면 식탁을 그냥 확 엎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사실 그만큼의 의지도 상실당했다. 그러니까 제발... "헛소리 좀 그만해주시면 안 될까요." 도영은 두 손을 맞잡았다. 축 처진 이...
데자뷰 현상이다. 아니면 차에서 나오는 게 히터 바람이 아니고 수면 유도 가스던지. 흥칫뿡 감수분열 사태를 지나 귀에서 피가 과다출혈 급으로 흐를 때쯤 잠들고 말았다. 아무리 일체형이라고 해도 그렇지, 조수석 시트가 무슨 침대도 아닌데... "대리님. 대리님." 해도 해도 너무 잘 잤다. 구타당한 듯 아팠던 근육들이 한결 가뿐해졌을 정도의 딥슬립이었다. ...
김도영 사는 빌라 이름은 태영그린이다. 약 1970년도에 준공되었으며, 준 아파트 단지와도 같은 오 층짜리 건물들이 세 개의 동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 김도영의 서식지는 정확히 나동에 202호. 창문을 열면 방범용 철창이 붙어 있는 평범한 가정집이다. 누구 집처럼 명품백 던지고 울 수 있는 통유리도 없고, 그 앞으로 보이는 한강도 없으며, 높이도 어중간하...
김도영의 첫 연애는 열아홉 살이었다. 상대는 무려... 놀라지 마시라. 담임선생님이다. 대학교 조기졸업에 군 면제까지 얻은 특이 케이스로, 그나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스물다섯이긴 했지만... 기함이 절로 나올 일이긴 하다. 어떻게 학생이 선생님이랑? 그러나 김도영 기준 여섯 살 차이는 거의 친구와 다름없었다. 첫사랑은 중딩 시절 학생주임 선생님에, 이상...
요즘의 김도영 서식지는 드레스 룸이다. 박호영과 둘이 살고 있는 십팔 평짜리 투룸은... 사실 말이 투룸이지 그냥 창고가 딸린 일 점 오 룸으로 봐도 무방했다. 퀸 사이즈 침대 하나 들어가면 빠듯한 침실과, 행거 두 개 전신거울 한 개 놓고 나면 터지기 일보 직전 되는 쪽방 하나. 구옥답게 거실은 쓸데없이 존나 넓었다. 어차피 거기서 하는 거라곤 플스밖에...
도영은 마스크를 추켜올렸다. 누런 라인 붙어 있는 구 호선 승강장이었다. 시간은 아홉 시 이십 분, 하필이면 코레일 파업이 있는 날이다. 선 채로 멍하니 흘려보낸 지하철만 이번이 벌써 세 대째였다. -어디야? 왜 안 와-너 어제 집에도 안 들어왔지?-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벌써 애인 생겼냐? 휴대폰이 징징댔다. 언제 씹어 놨는지 귀퉁이는 영숙이의...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다. 누가? 김도영이.언제? 일요일 점심이었다.어디서? 신도림 디큐브시티(집에서 고작 1.5km 떨어져 있음)에서.무엇을? 4층 뉴발란스 매장에 신발을 사러 갔다가.어떻게? 계산을 마치고 나온 직후 마주쳤다. 남편은 파란색을 싫어한다. 본능적으로 쿨한 컬러에 이끌리는 김도영이랑은 정반대였다. 그 덕에 직접 돈 주고 산 커플 신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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